페스트 소설 [소설] 페스트

항상 현대소설만 읽고 오랜만에 읽은 고전

1940년대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전염병 이전에 지금과 비슷하게 대처해 비슷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우리 시민들은 야외생활을 하며 더 활동적으로 움직이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흑사병을 위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그 침울한 도시를 누비느라 매일의 추억을 되새기며 시시콜콜한 유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하다 보면 항상 같은 길로 가게 되고 도시가 작은 만큼 그들이 산책하는 길은 대부분 지금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과 예전에 함께 다녔던 바로 그 길이었기 때문이다.

896자 전보에 사랑해, 보고 싶어라는 말로 정성을 기울였는데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마음이 희미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구절도 감탄하며 읽었지만 도시가 통제되면서 도시 밖의 가족이나 연인과 생이별했던 사람들이 고립감과 그리움을 느끼는 감정을 자세히 서술해 곧바로 이입하게 됐다.

코로나의 시기를 거치며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이 느끼는 고립감을 해결할 수 없다고 느끼고…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건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비웃을지 모르지만, 흑사병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함입니다.

194 때는 성실함이 미련으로 보이는 시대지만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자신의 중심을 찾고 그것을 우직하게 지키는 힘이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흑사병의 주인공 이외는 거창한 이상이나 신념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때로는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세운 이정표에 따라 걷는다.

과거에는 성실함이 큰 미덕이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비웃을지 모르지만 하는 대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성실이란 언제나 좋은 가치인 양 내세울 뿐 은근히 무시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성실성의 결과는 언제나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야 얻어지기 때문에 이제 끝날 때인데라고 시민들은 되뇌었다.

우리 시민들은 순종적이고 말 잘 듣게 적응했는데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물론 불행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의 태도는 여전했지만 그것을 더 이상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예를 들어 의사 이외에는 바로 그것이 불행이며, 습관이 돼버린 절망 그 자체보다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214명의 고통과 집단의 고통이 어우러져 절망에 무뎌지지 않고 체념을 습관화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순간에라도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모두 반복돼 온 것 같다.

흑사병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나눌 힘을, 우정을 나눌 힘마저 앗아간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랑에는 어느 정도 미래가 요구되지만 우리에겐 순간만이 남은 것이다.

저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른 길을 가기 위해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96 사형도 인간이 남을 해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타르, 말을 탄다는 문장 하나를 수십 번 바꾸며 다진 그랑, 자신의 역할을 찾아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들을 관찰해 왔다.

페스트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면서도 도덕적으로는 비범하다.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라는 상식적인 말을 정말로 그렇게 믿고 실천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연결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역할과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개인이 무엇을 위해 감내하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은 기자이기 이전에 애인을 사랑하는 사람뿐이라고 탈출을 계획했던 랑베르를 통해 그냥 사랑 등의 힘을 생각하게 한 대목이 정말 좋았다.

행복은 전속력으로 다가왔고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복구돼 기쁨은 화상을 입은 듯하며 음미할 겨를이 없음을 랑베르는 깨달았다.

344 그러면서도 때로 뜻밖의 행복에 화상을 입을 때도 있고, 불행에 익숙해져 오는 행운에 당황하는 마음까지 너무 내 생각과 비슷해 소름이 돋고 놀랐다고나 할까. 작가들은 도대체 어떤 족속일까. 통찰력에 기가 막힐 때가 많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염병 시대에 이미 한 번 막을 내린 이야기를 보면 긴 터널의 끝을 미리 맛본 것 같았고, 그것만으로도 코로나 시기에 왜 많은 사람이 옛날부터 <페스트>를 꺼냈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