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화성에서 온 남자

워낙 유명한 베스트셀러라서 이름은 들어봤지만 읽어보진 못했다.

그런데 최근 남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사실 추천이라기보다 강요에 가까웠는데, “수지가 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니 정말 (책까지 사준다는) 안 읽을 수가 없다.

1993년 초판은 꽤 오래된 책이다.

오래전에 이 책 제목만 듣고 남녀 로맨스 소설일까..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남녀 얘기는 맞지만 두근거리는 로맨스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전쟁 같은 사랑 이야기. 커플이 왜 조르는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될 수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각각 남녀의 입장에서 해설한 책이다.

남자를 화성에서 사는 사람, 여자를 금성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비유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그만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인간이지만 다른 행성에서 왔듯이 남자와 여자는 그 차이가 분명한 것이다.

실제로 남녀 심리를 다룬 책이 많은데 이 책이 왜 오랫동안 사랑받는 걸까.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도 좋았지만 여자의 입장을 너무 잘 이해해 줘서 마음이 후련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대변인이 대신 해주는 느낌이랄까.특히 뭔가 읽고 깨달은 것이 있어도 실천하기란 어려운 법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남편과의 관계를 위해 변화를 주는 사소한 팁이 많아서인지 해보고 싶었다.

조언이 막연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남편이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이해해 줘 기쁘기도 했다.

물론 남편이 이 책에서 안내한 대로 나를 대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하면서도 나도 남편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때문에도 내가 먼저 변하면 상대방도 그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구나… 다시 알게 된다.

책이 출간된 시기가 너무 오래돼 지금과는 좀 맞지 않는 것도 많았다.

웃을 타이밍이 아닌데도 웃긴 것은 KBS 토요명화 스타일 더빙이 400쪽이나 돼서인지 다소 현장감이 약했다.

“톰, 당신이 불쾌했다면 미안해.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나를 다루는 것은 언어도단이에요.” 현재라면 이 말투를 “톰,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나를 대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이렇게 되나? 어쨌든 말의 저의를 알겠는데 언어 선택과 말투가 올드하고 너무 아침드라마 대사 같아 이 책은 확실히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체 문장이라 더 그렇게 느껴질지도 몰라.

저자는 이렇게 하면 상대방에게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해 준 예나 말도 보통 여자는 집에 있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도 작은 집안일을 해야 한다며 팁을 줬지만 지금 남자들이 집안일을 안 하면 큰일 나요. 아내한테 국물도 못 마셔요. 아무래도 90년대 커플들이 더 공감하지 않았나 싶다.

나라마다 사람들의 성향과 기질도 다르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기준이 서서히 무너져서인지 이 책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뚜렷이 남녀의 정형화된 모습이 지금의 남녀와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어떤 것은 내가 화성에서 온 것 같고 또 어떤 점은 남편이 금성에서 온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사 분담도 잘 되고 육아휴직도 있어 여성이 집에 있는 것보다 함께 맞벌이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지 남성이 집에 와서 아내가 해주는 밥만 기다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오래된 책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남녀가 갖는 특징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커플이 이 책을 남녀 전열의 바이블처럼 읽고 있지 않나 싶다.

남자는 고무줄 같고 여자는 파도 같다.

남자는 동굴로 들어가고 여자는 우물로 들어간다.

결국 나자신은 필요할때 사랑하지 못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어. 내가 이렇게 아픈데 나를 더 많이 사랑해주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던 건 아닐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남편은 나보다 더 힘들고 아팠을지도 몰라. 아니… 내가 언제 남편을 정말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는지 미안하게 생각해.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니 상대방의 고충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한 가지 결심한 것은 남편을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고장 나지 않을 건 고치지 말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남편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적용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혹시 또 잊어버리고 예전대로 너부터 변하라고 호통을 칠지 모르지만 그때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으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싶다.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로 결심하고 싶은 것은 그만큼 남편과 잘 지내기를 원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이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고. 내가 좀 관대해지고 실수를 하더라도 남편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면, 이 책에서 내가 격하게 공감한 여성에게 점수를 주는 101가지 방법을 남편이 실천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한다.

모든 금성인과 화성인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그날까지 이 책이 오랫동안 많은 커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